2000년 이후 13년간 법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 채 음지에서 환자를 치료해온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확대가 이뤄질 수 있을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한국응급구조학회, 전국응급구조학과 교수협의회, 임상응급구조사회 등 응급구조사들은 15일 을지대학교 성남캠퍼스에서 ‘응급구조사 역할과 비전을 위한 대국민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응급구조사 뿐 아니라 민주통합당 김춘진 의원. 정책위원회 허윤정 부위원장,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 김진숙 사무관, 소방방재청 구조구급과 김태한 계장,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신상도 교수, 한국생활안전연합 윤선화 상임대표 등 정ㆍ관ㆍ의학계ㆍ시민단체 인사들이 참석했다.
대한응급구조사협회 유순규 회장은 “최근 119 구급대 및 의료기관 내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와 역할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이 포럼을 마련했다”며 “이들의 질적 성장이 곧 응급의료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주제 발표를 맡은 한국응급구조학회 엄태환 회장은 현직 응급구조사 업무 내용에 대한 연구를 통해 활동 범위가 제한되는 이유와 향후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전국 1만여 명의 1급 응급구조사는 병원에 약 31%인 3300명, 119 구급대 2700여명, 기타 산업체에 130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응급구조사 업무범위가 제한되는 이유로 가장 많은 것은 교육과 훈련 부족(39.8%) 이었으며 법적인 제한(38.1%), 직접의료지도 부재(20.4%)가 뒤를 이었다.
그는 “지난해 발간된 중앙응급의료센터 보고서에도 업무 확대시행 의견이 높았다”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업무범위를 고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불가피한 의료활동 수행 불구 보호장치 전무"
이어진 토론에서 임상응급구조사회 김건남 회장은 응급환자에 삽관을 했다가 보호자들이 이를 알고 항의한 사례를 들며 “응급구조사들이 허용되지 않는 의료활동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데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포럼 참가자들은 이러한 병원 내 응급구조사 활동에 대해 양성화 하는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응급구조사뿐 아니라 정책을 입안하는 정치계와 복지부, 그리고 전문가인 응급의학과 교수 등의 의견이어서 의미가 깊다.
신상도 교수는 “법에 규정된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는 응급 상황에서 의사 지도없이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침”이라며 “이를 병원에서 의사와 함께 의사를 돕거나 지시를 받아 환자를 보는 것에도 똑같이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태한 계장은 “1급 응급구조사라면 구급차에 장비를 이용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처치도 법적 제한 때문에 시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확대는 국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윤정 부위원장은 “이미 자격증이 있는 응급구조사에게 병원에서 간호조무사 학원을 다니라고 요구하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구조사는 진료보조를 할 수 없지만 간호조무사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업무범위 확대를 위한 과제도 남겨졌다. 국민들이 응급구조사란 직종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고 응급구조사 질관리 및 업무범위 확대를 위한 근거 마련과 설득 작업 등이다.
대한응급의학회 유인술 이사장은 “이 행사가 응급구조사 역할 정립과 업무범위 확대를 위한 초석이 되길 바란다”면서도 “응급구조사 질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업무범위 확대가 이득이 될 것이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활안전연합 윤선화 상임대표도 “3년 전 응급구조사협회와 같이 봉사활동을 진행하기 전에는 이러한 직종이 있는지 몰랐다”며 “국민들에게 응급구조사를 알리기 위한 홍보활동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진숙 사무관은 “의료행위를 하는 분들이 실제로 피해를 입고, 피해의식을 느껴 자존감이 떨어진다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면서도 “업무범위 확대는 민감한 부분”이라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날 열린 행사에는 약 600여명의 응급구조사 및 응급구조학과 학생들이 참여해 자리를 가득 메웠다.